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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와 돌리의 탄생

멋있는 2020. 10. 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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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발견한 이래로 1996년 7월 5일 에든버러에 있는 로슬린 연구소에서 최초의 복제 양 돌리가 탄생하기까지 분자생물학은 43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다음해 1997년 2월 돌리의 존재가 네이처지를 통해 알려지자 전세계 언론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돌리는 핵을 제거한 무수정 난자와 여섯 살 된 암양의 젖에서 떼어낸 체세포를 융합해 만들어졌다. 이 복제 양 돌리의 이름은 창조자인 윌머트 박사가 유명한 글래머 여가수 돌리 파튼의 이름에서 빌어와 지은 것이다. 윌머트가 사용한 무성 복제 기술은 핵 이식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지난 수년간 다른 과학자들이 동물을 배세포로부터 복제하기 위해 사용해 온 기술이다. 핵 이식은 복제하고자 하는 배세포에서 떼어낸 핵을 미리 핵을 제거한 난자에 집어넣음으로써 이루어진다. 동물의 경우 증여 세포는 핵을 갖고 있는 완벽한 세포로서 수령 난자와 융합된다. 융합된 세포들은 정상적인 배아처럼 분화하기 시작하고, 이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하게 되면 후손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것이 윌머트가 돌리를 복제하면서 사용한 기본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돌리의 탄생에는 한 단계 발전된 기술, 즉 다 자란 양의 체세포를 배세포 상태로 바꾸어 복제하는 기술이 사용됐다. 일단 분화를 마친 성숙한 체세포는 분화되지 않는 배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게 기존의 과학자들의 생각이었는데, 윌머트가 돌리를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했다. 정지된 세포는 윌머트의 연구실에서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전기 충격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작되어 정자의 행동을 흉내내도록 만들어졌다. 생식세포가 아닌 체세포를 복제했다는 사실도 무척 놀라운 것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복제 동물이 제2세를 탄생시킬 능력까지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999년 3월 돌리는 데이비드라고 이름 붙여진 숫양과 관계를 맺고 두 마리의 양을 출산했다.

 

 

 

멀고 험난한 인간 복제의 길

 

복제라는 말은 이제 일반인에게도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과학자들은 주로 식물 복제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그들은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기술을 응용해 식물의 서로 다른 종을 교배시켜 잡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귤과 오렌지를 교배해 만들어낸 탄젤로라는 새로운 종은 모양도 좋을 뿐 아니라 맛도 좋다. 하지만 돌리의 탄생을 이끌어낸 현대적인 유전공학 기술은 1950년대 DNA 구조가 밝혀진 다음에야 가능했다. 발생학자인 로버트 브릭스는 유전자가 분화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활성화 또는 비활성화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개구리의 배세포에서 추출한 핵을 197개의 개구리 알에 넣는 실험을 했다. 이중에서 35개가 배아가 되었고, 27마리의 올챙이가 태어났다. 당시 이 올챙이의 탄생은 초기 배세포의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혁신적인 연구 결과였다. 1960년대 후반에는 존 거든이라는 옥스퍼드 대학의 발달생물학자가 브릭스의 실험을 재현하려 했다. 브릭스의 방법을 이용해 거든은 초기 배세포 안에 이미 200여 개의 신체 기관의 생성을 포함한 모든 유전 정보가 들어 있음을 증명해 냈다. 또한 핵 이식 과정에서 세포 핵을 좀더 조심스럽게 다루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리고 다음의 중대한 진보가 있기까지 또다시 10년이 걸렸다. 1979년 여름 칼 일멘시라는 독일 과학자가 제네바에서 세 마리의 생쥐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느 발표를 하자 전세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 생쥐는 배세포로부터 복제한 최초의 포유류였다. 일멘시의 업적이 굉장한 것이기는 하지만, 머트의 돌리에 비하면 그 의미가 훨씬 적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멘시는 매우 어린 생쥐의 배세포로부터 얻어진 세포를 사용했고 윌머트는 체세포를 사용해 그 체세포를 제공한 성숙한 개체와 똑같은 쌍둥이 동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돌리가 받았던 언론의 관심에는 못 미쳤지만, 일멘시에 발표는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뉴욕 타임스지는 이 연구 결과를 머릿기사로 다루면서 "지금까지 발표된 동물 복제 실험의 경우 결코 검증되지 못했고,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실험은 권위 있는 과학 잡지에 의해 인정된 최초의 결과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음날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과학자들이 예전에는 공상과학이라고 치부했던 포유류의 복제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쓰고 있으며, 뉴스위크지의 기자 샤론 베글리는 "이제 포유류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으니, 인간이 복제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일멘시의 뒤를 이어 동물을 복제하려는 다른 실험들이 계속됐다. 1983년에는 일멘시의 동료인, 데이비드 솔터와 제임스 맥스래스가 이 생쥐의 세포에서 저 생쥐의 세포로 핵을 옮길 수 있는 프로토콜을 개발함으로써 돌리 탄생을 예고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소에서 일하던 젊은 과학자 스틴 윌라센은 핵이 없는 무수정 난자를 사용해 최초로 배아를 만들어냈다.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과학 연구가 대학 내 연구소에서 시작된 것과는 달리, 복제 실험은 주로 농장이나 농가에서 이뤄졌다. 그 곳에서 연구원들은 가축들에 둘러싸여 연구를 했다. 이러한 농장 실험실은 주로 상업용 농장 작물 생산자들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았다. 예를 들어, 1994년 닐 퍼스트는 W.R. 그레이스 앤드 컴퍼니 사로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 받아 동면기에 일어나는 소의 세포 분열 현상을 연구했다. 그는 이 세포 분열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여러 마리의 송아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로 배양된 세포로부터 탄생한 최초의 포유류는 쌍둥이 염소 메간과 모랙으로 1995년 윌머트에 의해 로슬린 연구소에서 태어났다. 돌리는 사실 그 다음인 것이다. 한편 인간을 복제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윤리적, 정치적, 종교적 논쟁을 전세계에 불러일으켰다. 인간 복제를 불법으로 금지하려는 입법 시도가 현재 미국 의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복제 실험의 문제는 비단 미국에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과학자들은 이미 실험실에서 인간 복제의 첫번째 단계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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